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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유족 울분에 공감해야”…‘사형제 존치론’ 우위

Apr,15,2023 현지의 신민정 기자 사진 신민정 1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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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응보’ 사형제 논란
가족 잃은 아픔 달래는 ‘응보주의’
여론 ‘사형제 유지’ 우세하지만
대체형벌 전제 폐지론에도 공감
국가, 범죄 예방·치유 적극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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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14일 헌법재판소가 연 사형제 헌법소원 공개변론 모습. 연합뉴스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는 쪽에서 말하는 주요 근거 중 하나는 응보주의다.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 무거운 처벌을 하는 것이 곧 정의 실현이라는 취지다. 범죄자들이 죄의 무게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해달라는 피해자의 호소에 눈감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형제 유지를 주장하는 법무부 쪽은 이런 범죄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강조한다. 법무부는 지난해 7월 헌법재판소 사형제 폐지 공개변론에서 “살해된 피해자의 유족은 살 수가 없다. 유족의 울분을 우리 사회와 국가가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범죄 피해자 가족들을 지원해온 이용우 한국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이사장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피해자 유족들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한이 맺혀 매일 고통 속에 살아간다”고 말했다.



범죄 피해자 지원 턱없이 부족



실제 범죄 피해자 가족들은 “억울하고 원통하다”며 재판부에 사형 선고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스토킹하던 여성의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석준(27)씨에 대해 피해자 유족은 “억울하고 분해서 매일 밤 눈물로 지낸다. 이석준은 세상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며 사형 선고를 호소했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안산시에서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아들을 잃은 피해자 아버지는 국회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형제 부활’을 촉구하는 글을 올리며 “아들의 허무한 죽음은 가족 4명 모두의 죽음”이라고 했다.


다만 피해자 가족 모두가 사형 집행을 요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인 현대일(루도비코) 신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모든 피해자 가족이 사형제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 가족 중에서는 힘들게 모은 돈으로 사형제 폐지를 위해 일하는 저희를 후원해주시는 분도 있다”고 했다.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는 사형제 폐지 운동과 함께 범죄 피해자 가족 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데, 현 신부는 10년째 한달에 한번꼴로 모이는 피해자 가족 모임에서 치유를 돕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사형제에 반대하는 피해자 유가족 19명이 로이 쿠퍼 주지사 관저 앞에서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처형이 우리에게 정의를 가져다줄 거라는 전제를 거부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은 입장에서 다른 가족이 그런 일을 겪지 않길 바란다. 사형은 우리 가족을 되살릴 수 없고, 폭력을 지속할 뿐이다.” 범죄 피해자의 가슴속에 남은 응어리를 살피고 돌봐야 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강한 처벌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의미다.


정부가 사형을 통한 응보의 역할만을 강조하기보단 남아 있는 가족의 치유와 회복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범죄 피해자를 보호·지원하기 위해 2011년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 마련됐지만 피해자에게 충분히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2020년 6월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의 70%가 시설 운영비로 쓰이고, 피해자 직접 지원은 30%에 머무는 등 충분한 지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는데, 법무부도 지난해 7월 ‘범죄 피해자 보호지원 시행계획’에서 “피해자에 대한 직접 지원 비율이 낮은 점이 지적되고 있어 피해자에 대한 직접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교수(경찰경호과)는 “범죄 발생에는 가해자와 함께 국가와 사회의 잘못도 있다. 범죄를 예방하고 피해자의 회복을 지원하는 과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사형 집행이 유일한 국가의 의무이자 역할이라고 볼 순 없다”며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트라우마 치유, 미성년 자녀가 클 때까지 교육과 생활을 지원하는 방안 등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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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방 없는 종신형’ 논의 지지부진



사형제 존폐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국민 여론은 언제나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만 대체 형벌이 마련된다는 전제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폐지에 찬성한다”는 비중이 더 높아, 사형제 폐지를 전제로 한 대체 형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갤럽이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여섯차례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크게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9월 조사에서는 유지(52%)와 폐지(40%) 여론이 12%포인트 차이까지 좁혀지기도 했지만 가장 최근인 지난해 7월 조사(전국 18살 이상 1천명 대상)에선 사형제 존치 의견이 69%로 ‘폐지’(23%)를 압도했다.


하지만 ‘대체 형벌 도입을 전제로 사형제 폐지에 동의하는지’를 물었을 땐 다른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10월 전국 20살 이상 1천명에게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대체 형벌이 마련될 경우 66.9%가 사형제 폐지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폐지 반대는 31.9%에 그쳤다. 이 조사에서도 대체 형벌에 대한 언급 없이 사형제 폐지 여부만을 물었을 땐 폐지 20.3%, 폐지 반대 79.7%로 다른 설문조사 때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형 폐지 이후에 벌어질 수 있는 흉악범죄 증가 등을 우려하기 때문에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물으면 폐지 반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사형제 폐지 이후 대안이 마련되면 의견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체 형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2004년 유인태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 등 175명이 절대적 종신형(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는 사형폐지특별법안을 처음으로 발의했지만, 국회가 새로 들어설 때마다 실질적인 심사 없이 발의와 폐기만 반복되고 있다. 이덕인 교수는 “입법자들이 사형제 폐지 법안 발의로 그치는 게 아니라 관련 논의를 이어가야 하는데, 미흡했던 게 사실”이라며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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